[95호] 스스로 결정하는 법을 아는 아이들

 초대를 받아 친구의 집으로 식사를 하러가던 길에 스포츠 용품점에 들러 친구 아들에게 선물 할 제법 값나가는 축구공을 하나 샀다. 동네 축구팀에서 가장 실력이 좋다는 아이는 곧 FC바르셀로나 유소년팀에 입단 테스트를 앞두고 있다고 했다.

 아무튼 그날 저녁, 밥을 먹는내내 TV에 연결한 캠코더로 아들의 플레이 모습을 보여주는 친구의 모습을 보며 한국과 다르지 않구나 싶었다. 나에겐 다 똑같은 아이들의 축구일 뿐인데 그에게는 동작 하나하나가 그리도 자랑스런 모양이었다. 몇주가 지나고 드디어 입단테스트를 하러 간다는 친구네 가족들에게 가서 사진이라도 몇 장 찍어주겠다며 눈치 없이 따라나섰다.

 테스트가 있는 FC바르셀로나 팀의 연습구장에 도착한 나는 너무나 익숙한 풍경에 좀 당황했던 것 같다. 그것은 마치 마치 대입 수능을 치르는 시험장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운동복 차림의 아이들 곁에는 아이들보다 긴장한 모습의 가족들이 가득했다. 이미 시작된 앞 조의 테스트를 지켜보는 가족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하지만 정작 내가 더 크게 놀란건 몇일 후의 일이다. 입단 테스트에 합격을 해서 계약을 제안 받았다는 소식을 전하며 기뻐했던 친구에게 축하인사를 전한지 일주일쯤 되었을까 아들은 새로운 팀에서 잘 뛰고 있느냐고 물었더 '그냥 예전 팀에 남기로 했어' 라며 어깨를 으쓱한다. 이유를 물었더니 기동네 축구팀의 정든 친구들과 헤어지는게 싫다고 해서 네 뜻대로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내가 놀란 표정을 했더니 그 결정을 한 아들도 자신도 전혀 아쉬워 하지 않는다며 웃어주었다. 아니 그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내가 더 아쉬워하고 있었다. 아마도 나는 그 아이가 나중에 유명한 축구 선수가 되면 내가 그 아이에게 축구공을 사줬었노라 숟가락을 얹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그 부모의 맘은 나보다 스무배쯤은 더 아쉬워해야 하는게 아니겠느냔 말이다. 

 내가 아는 한 이곳 사람들의 교육 방식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가 잘하는 것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돕고, 함께 기뻐하고 힘들어한다. 하지만 중요한 결정의 순간을 마주하게되면 그 결정은 온전히 아이의 몫이 된다. 그리고 그것을 바꾸려고 하지도 나무라지도 않는다. 이는 동네 놀이터나 공터에서도 마찬가지다 천방지축으로 소리지르며 뛰어노는 어린 아이들을 나무라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다만 그러다 넘어지고 다쳐도 일어나라고 말할뿐 누구 하나 아이에게 손 내밀어 주지 않는다. 당연하게도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커서도 선택을 남에게 미루는 법이 없다. 그리고 그에 따르는 결과를 받아들인다. 어쩌면 '여기 애들 참 쿨해' 했던 수많은 순간들이 사실은 그들에겐 쿨한 것이 아닌 당연한 책임감 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교육방식의 긍정적인 효과를 알고 다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이 어린 축구선수의 선택을 지지 할 용기가 나에겐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네 가족을 내내 지켜보면서 나도 이 도시에서 아이를 낳아 키워보고 싶단 생각이 드는 건 내가 자라온 내 나라의 아이들이 지금 이순간에도 얼마나 고된 일상을 보내고 있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어린 축구 선수가 메시보다 덜 행복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걸 이제는 알 것도 같다.

[93호] 시위와 축제 사이

 바르셀로나 시내를 걷다보면 집집마다 걸려있는 빨간색과 노란색 줄무늬 깃발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세녜라 Senera 라고 불리는 이 깃발은 까딸루냐주를 상징하는 깃발이다.

 그렇구나 하고나면 그제야 의문이 생긴다. 관공서를 제외하고는 스페인 국기가 걸려있는 집은 보이지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주민의 절반가량이 까딸루냐의 분리독립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 깃발들은 ‘우리는 까딸란(까딸루냐 사람을 의미하는 스페인어)이다’ ‘우리는 독립을 원한다’ 라는 의미를 내재하고 있다고 보면 되는 것이다. (이 깃발에 별모양이 추가된 것은 좀 더 명확하게 분리 독립을 향한 목표를 의미한다.)

 이들의 정신을 가장 뜨겁게 체감 할 수 있는 날이 9월 11일 까딸루냐의 날이다. 올해는 까탈루냐가 1714년 스페인 프랑스 연합군에 항복하고 스페인왕국에 합병된지 300년째를 맞아 예년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시위가 있었다. 게다가 올해 11월 9일 분리독립 주민투표를 앞두고 더욱 뜨거운 분위기로 까딸루냐의 날이 채워졌다. 

 이날은 수십만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독립”을 외치며 시위를 하는데 이 시위라는 것이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그건 현 자치정부 역시 까딸루냐의 독립을 희망하기 때문에 공권력의 도움(?) 속에서 진행되는 시위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아이들부터 애완견까지 함께 나와 온가족이 참여하기도 하며 전통 문화 공연과, 지역 음식이 어울어지는 시위의 풍경은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수록 정겹기까지 하다.

 독립을 외치는 굵은 목소리 사이에 도시 곳곳에서 들려오는 연주 소리가 겹치고, 거친 구호를 쓴 현수막 흔드는 어른들 사이로 목마를 탄 아이들 세녜라를 흔드는 모습들이 섞이는 순간 자칫 거칠어 질 수 있는 시위가 모두가 즐기는 축제가 되는 것이다. (이지역 출신의 세계적인 축구선수인 사비 에르난데스, 헤라드 피케등을 비롯한 바르셀로나 축구 스타들도 아이들과 함께 시위에 참가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놀라운 풍경은 전통문화 공연에 참여하는 연주자들과 연기자들 역시 모두 남녀노소의 일반 시민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 하나하나는 그 어떤 전문가 보다도 진지하다. 진심이 느껴진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만큼 뜨겁다.

 이방인으로써 그들의 시위(혹은 축제)를 1박 2일동안 지켜보면서 느낀 건 시위에도 이들만의 방식이 있다는 것이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메세지를 전달하는 방법에는 피켓에 써인 문구나 크게 외치는 목소리만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배운다. 오늘도 바르셀로나 거리에는 집집마다 세녜라가 펄럭인다.

[91호] 당신의 고딕 지구가 궁금하다

 길을 잃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길을 걸었고 대성당을 지나쳐 온 것 같은데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은 요 몇일 내가 다녔던 곳이 아니다. 인적이 드물어지면 환한 대낯에도 긴장을 하게 된다. 왠지 골목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저 남자는 나를 향해 오는 것 같다. 잔뜩 긴장했지만 아무렇지 않은척 하고 그 남자를 스치고나니 그를 신경쓰느라 길을 돌아보지 못했다.

 왠지 어둑한 골목을 되돌아가려니 미로처럼 얽힌 길은 내가 지나 온 길과 아닌 길을 구분하기 쉽지 않다. 인적이 드문 좁은 골목을 걷다 고개를 들어보니 집집마다 널어놓은 빨래가 가득하다 하늘반 빨래반. 왠지 안심이 되는 풍경이다. 사람들이 살고 있나보구나. 당연한 생각을 그제서야 한다.

 그러고나니 주변이 보인다. 난데 없이 나타난 작은 카페. 아니다 술집인가. 아직 해가 지려면 한참 남았는데 서른 중반쯤 되어보이는 남자가 담배를 피우며 맥주를 마시다 나를 쳐다본다. 왠지 나도 그 곁에 앉고 싶어졌다. 커피를 한잔 주문한다. 새하얀 백발의 노인이 커피를 내어주며 뭐라고 스페인어로 한참을 떠들었다. 알아들었을리 없는 나는 환하게 웃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때가 고딕지구를 처음 갔던 날도 아니었고 그 후로 지금까지 수백번 고딕지구를 걷지만 난 그날 내가 만난 고딕지구가 진짜 고딕지구라고 믿는다. 이방인에겐 왠지 모를 긴장감과 함께 만나게 되는 사람 사는 풍경. 구석구석 관광객들의 발길이 적은 길을 골라 다니며 모르는 골목이 없는 지금까지도 그때 내가 갔던 그 카페인지 술집인지 모를 그 곳을 찾아내지 못했다.

 아마 다시 가더라도 기억해내지 못할지도 모른다. 구시가지의 골목들이 그렇듯 오랜 카페들은 닮아있다. 심지어 낡아빠진 검정 베스트를 입고 있는 주인장들의 외모도 닮아있다. 어쩌면 그날의 고딕지구는 언젠가 꾸었던 꿈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고딕지구는 매번 다르다. 그리고 모두에게 다르다. 혼자 걸을때와 친구와 함께 걸을때가 다르고, 지도를 펼쳐들고 걸을때와 마냥 헤맬때의 모습이 다르다. 그리고 이어폰에 흐르는 음악에 따라 다르다. 게다가 맑은날과 비오는 날의 차이는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다르다. 문득 당신의 고딕지구가 궁금하다.

[89호] 바르셀로나의 축구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월드컵이 한창이던 지난 6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스페인이 예선 조별리그에서 탈락했을 때 정말 많은 지인들이 ‘그곳 분위기는 어때?’ 라고 물었었다. 혹은 바르셀로나 여행을 가려고 하는데 분위기가 좋지 않을까 봐 걱정 이라는 글들이 여행 커뮤니티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우리나라 대표팀의 공격수 이름은 몰라도 메시라는 이름은 누구나 들어봤을 정도로 알려졌고, 자연스레 바르셀로나는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득할 거란 결론에 닿고 나면 월드컵은 어마어마한 이벤트겠구나. 라고 생각하게 마련이니까 당연한 질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작 이 도시 어디에서도 ‘스페인’의 탈락을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역사 속의 이야기들을 생략하고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바르셀로나 사람들은 스스로를 스페인 사람이 아닌 까딸루냐(바르셀로나가 속한 주)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고, 축구는 오랫동안 지역감정을 대변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 지역감정은 쉽게 한일감정에 비유되기도 하는데 어떤 면에서는 그 골이 한일감정보다 훨씬 깊다고 느껴지기도 할 정도이다. 그러니 이들의 입장에서 스페인 국가대표팀은 자신들을 대표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국왕 컵’ 대회에 임하는 자세를 묻는 기자에게 ‘당신들의 국왕’컵에 대해 묻지 말라고 대답했다는 이 지역 출신 FC바르셀로나 선수의 인터뷰 일화는 놀랍지도 않다. 그러니까 그 선수는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대을 밖으로 꺼냈을 뿐이다. 전국 시청률이 80%를 넘긴다는 유로컵 대회에서도 까딸루냐 지역이 전국 최저 시청률을 기록한다. 

 아무튼, 스페인의 탈락이 확정된 다음날 만난 친구들에게 월드컵 얘기를 꺼냈더니 어깨를 으쓱하고는 되려 한국은 잘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이곳 사람들은 월드컵 중에도 곧 시작될 새 시즌의 FC바르셀로나를 걱정한다. 언론은 FC바르셀로나 소속의 선수들이 각자의 고국으로 돌아가 대표팀에서 활약하는 소식들이 1면을 채운다.

 유럽여행을 할 때 가이드북 보다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는 편이 좋다는 이야기처럼 바르셀로나를 여행하게 된다면 스페인보다는 까딸루냐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 더 큰 도움이 된다. 그러고나면 이곳에서 겪게 될 낯선 풍경들을 하나씩 이해할 수 있다. FC바르셀로나 축구팀 주장 완장의 무늬 마져도 달라 보이게 될 테니까. 그리고 그것은 비단 축구뿐 아니라 언어와 문화를 아우르는 시선의 변화를 가져다준다.

 월드컵 결승전이 끝나던 날 바르셀로나 시내에는 FC바르셀로나에 소속된 선수가 둘이나 있는 아르헨티나를 위로하고 응원하는 함성이 늦은 밤까지 이어졌다. 그제야 월드컵 기간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고, 그땐 이미 월드컵은 끝이 나 있었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에게 축구는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다. 

 

 

[87호] 떠나거나 혹은 즐기거나

 유럽의 젊은이들에게 여름휴가지 1위는 단연 스페인이다. 다른 유럽 도시에는 없는 것들이 있는 탓이다. 여름내 맑은 하늘과 뜨거운 햇살, 바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지는 밤 문화, 비교적 저렴한 물가와 다양한 먹거리. 그 외에도 수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이 몇 가지 만으로도 여름 휴가지로서의 매력은 충분하다. 연중 여행객들로 붐비는 곳이지만 여름이면 특히나 많은 여행객으로 가득한 바르셀로나의 해변과 시내 구시가지는 주말과 평일의 차이를 느낄 수 없이 북적인다. 예컨데 예약하지 않고 가우디의 성가족성당에 갔다면 두어 시간은 땡볕 아래에 줄을 서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그렇다면 모두가 스페인으로, 바르셀로나로 모여드는 이 계절에 이 도시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가? 이 도시에서 첫 여름을 보내던 때의 기억을 되돌아보면 ‘쓸쓸함’만 가득했었다. 7월이 지나고 8월이 오면 오가는 사람들로 분주했던 동네는 문 닫은 세트장 마냥 썰렁해진다. 이곳의 여름휴가는 짧게는 3주에서 길게는 한 달 동안 이어지는데 그 긴 시간 동안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도시를 떠나는 탓이다. 

(여기서 잠깐. 여름의 스페인 여행을 준비 중이라면 기억해 두어야 하는 것이 있다. 당신의 여행 일정표에 한 줄을 채운 그 레스토랑 역시 여름내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유명한 츄러스 가게도 8월에 2주간 문을 닫고,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고딕 지구의 한 레스토랑도 8월 한 달간 문을 닫는다. 우리로써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이곳은 그렇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7, 8월 두 달간 모든 브랜드의 세일이 이어진다는 것쯤 되겠다.)

 한 달간 휴가를 받은 이곳 사람들은 집을 떠나 한적한 해안도시를 찾아가고 이런저런 이유로 장기간 휴가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또 그들 나름의 여름을 즐긴다. 9시가 넘어도 해가 지지 않는 이곳의 여름밤에는 매일 축제가 이어진다.

 

1. 현지인들의 대표적 휴가지 Costa Brava

코스타 브라바는 바르셀로나에서 프랑스까지 이어지는 지중해 연안을 부르는 이름인데 수십 개의 크고 작은 해변이 이어진다. 이곳들은 대중교통이 쉽게 닿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지만 고속버스 등으로 비교적 찾아가기 쉬운 해변들도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곳이 Tossa de mar이다. 오랜 성벽 위에서 내려다보는 아름다운 해변뿐 아니라 바닥까지 보이는 맑은 물은 대도시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이곳에는 연중 비어있다가 여름에만 가득 차는 아파트들이 많은데 이 또한 스페인 사람들이 휴가기간 동안 살다가는 별장 혹은 콘도형 주택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여행은 대체로 가족여행인데 스페인 사람들의 삶은 결혼 전과 후로 나뉜다고 할 만큼 결혼 후엔 가족 중심으로 살아간다.

2. 도시에 남은 자들의 축제

이런저런 이유로 도시에 남은 사람들은 그들만의 축제를 즐긴다. 바르셀로나의 현지인들이 즐기는 대표적인 여름 축제는 Sala Monjuic 과 Festa de Gracia다. Sala Monjuic은 여름 동안 몬주익 성에서 펼쳐지는 심야 축제인데 해 질 녘이 되면 먹고 마실 거리를 챙겨서 성벽 아래 잔디밭에 수많은 사람들 모이고 성벽 아래 무대에서는 짧은 콘서트가 펼쳐지며 해가 완전히 지고 나면 성벽의 대형 스크린에는 영화가 상영된다. Festa de Gracia은 8월 중순 관광객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그라시아 지구 전체에서 펼쳐지는 축제인데 골목골목 각기 다른 테마를 가진 설치작품과 그에 어울리는 공연이 낮부터 밤까지 일주일 동안 이어지는 그들만의 소박하지만 뜨거운 축제다. 

 

 나는 학창시절 해운대에서 10년을 넘게 살았었다. 하지만 나에겐 여름의 해운대 해수욕장에 가 본 기억이 없다. 대신 우리는 마치 우리들만 허락받은 곳인 것 마냥 관광객들을 피해 송정해수욕장으로 갔었다. 이곳 바르셀로나의 사람들도 똑같은 이유로 바르셀로네타 해변이 아닌 이 도시를 벗어난 곳에 있는 하지만 멀지 않은 곳의 바다를 찾는다. 그리고 올해에도 이 도시를 떠나지 못하는 나는 오늘도 몬주익 영화제의 상영 일정을 검색해 본다.

 

 

 

[85호] 할배들이 놓치고 간 것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을 굳이 다시 꺼내지 않더라도 <꽃보다 할배>의 여행은 모든 세대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낯선 땅에서는 할배들이나 우리나 그 나라의 동네 꼬맹이들보다 어리숙한 이방인이 될 수밖에 없는 탓이다. 대만 여행을 마친 할배들의 다음 여행지가 알려지기 전, 바르셀로나를 여행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어디어디에서 제작진을 만났다더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이 도시에 사는 우리에겐 반가운 소식이었다. 내가 늘 걷는 이 거리에서 할배들은 어떤 것들을 보고 갈까? 한국인들 몇이 모이면 미리부터 동선을 그려보기도 했다. 그런데 이내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내가 이토록 사랑하는 도시를 더 많은 사람이 알게 된다는 건 무엇보다도 신나는 일이지만, 바르셀로나의 매력을 다 보여주지 못하면 어쩌지?

 그렇게 <꽃보다 할배> 스페인 편의 방송이 시작되고 한동안 SNS에 바르셀로나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글이 이어지는 걸 보며 안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할배들이 코앞에서 놓친(혹은 편집된) 것 들에 아쉬움이 남았다. 물론 어떤 도시를 여행하더라도 짧은 일정에 만나지 못하고 돌아갈 수밖에 없는 곳들은 수없이 많다. 하지만 이곳에서 여행자들을 만나는 일을 하면서 할배들의 여정을 그대로 따라 걷는 여행자들이 늘어가는 걸 보면서 아차 싶었던 맘을 담아 바르셀로나를 찾는 대부분의 여행자가 들러 가는 곳 중 할배들이 놓친 곳들을 지면을 빌려 덧붙여보려 한다.

 

1. 몬주익 성

할배들은 바르셀로나 해변에서 몬주익 언덕 중턱으로 가는 케이블카를 탔다. 그리고 그곳에서 정상의 몬주익 성으로 가는 케이블카로 갈아타야 했지만 하필 점검 중이었던 탓에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하지만 할배들이 타지 못한 케이블카 정거장 바로 앞에서 150번 버스를 타고 5분 남짓이면 종점인 몬주익 성까지 갈 수 있다. 몬주익 성은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높은 곳 중 하나인데 한쪽으로는 바르셀로나 시내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고 다른 한쪽으로는 지중해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다. 그러니까 이곳은 성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이지만 성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을 보기 위해 가는 곳이라고 하는 편이 맞을지도 모른다.

2. 포트벨(항구)

바르셀로나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요트가 있는 도시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만큼 규모가 큰 요트 선착장이 여러 곳에 있는데 그중에서도 포트벨은 주변 경관이 손에 꼽는 곳이다. 해가 좋은 날이면 일광욕을 하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운이 좋으면 다리가 열리고 그 사이로 요트들이 드나드는 장면을 볼 수도 있다. 람블라스 거리에서 카탈루냐 광장의 반대 방향으로 내려가면 바로 닿는 곳이니 기억해두면 좋다.

3. 근교 도시들

여행지로서 바르셀로나의 매력은 다양한 모습을 한 근교 도시들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탈리아나 그리스 어디쯤의 풍경을 가진 하얀색 건물들이 늘어선 작은 해안도시 시체스. 골목골목에서 오랜 역사를 발견할 수 있는 타라고나. 바위산 위에 자리 잡은 수도원과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압권인 몬세라트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 도시들은 바르셀로나에서 기차로 30분에서 한 시간이면 닿는 거리에 있어, 한국에서의 장거리 출퇴근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그리 먼 곳도 아니다.

 

 한 명, 한 명의 여행은 다 다르다. 그래서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고 말할 수 없다. 모두에게 소중한 추억으로 가득할 게 분명한 여행에서는 놓친 것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만나고 간 것들이 안겨주는 감동이 더 크다는 걸 안다. 그래서 이런 훈수가 쓸데없는 오지랖이란 걸 잘 알지만, 유럽을 여행하는 모두의 말처럼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를’도시를 지나는 여행자들에게 이 도시를 사랑하는 다른 여행자가 노파심에 보내는 작은 응원이라고 생각해주었으면 한다.

 

 

[83호] 보른 지구에 숨겨진 바르셀로나의 진짜 매력

 ‘바르셀로나’ 하면 떠올리는 것은 무엇일까? 서른 해를 넘게 살았다면 황영조 선수와 함께 몬주익 언덕을 떠올릴지도 모르고, 이미 이 도시에 다녀간 경험이 있다면 가우디의 놀라운 건축물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축구를 좋아한다면 호나우지뉴와 메시로 대표되는 축구팀 FC 바르셀로나를 떠올릴 테고, 젊은 세대들은 자라나 망고로 대표되는 패션 브랜드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짜 바르셀로나를 완성하는 것은 사실 가이드북에나 가득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걸 이 도시에서 며칠만 여유 있게 지내보면 알 수 있다.

 문제는 우리의 여행이라는 게 그렇게 여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여유를 찾아 떠나온 여행이 여유롭지 못하다는 아이러니. 바쁜 일정을 쪼개고 휴가를 모으고 모아 몇 년 만에 나온 여행에서 바르셀로나에서만 며칠을 보낸다는 건 유럽의 수많은 매력적인 도시들을 두고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당신의 일정이 넉넉하지 않다면 바르셀로나의 매력을 짧은 시간에 만날 방법이 있다. 보른 지구로 가라.

 보른 지구는 바르셀로나 구시가지의 한가운데 관광객들로 가득한 고딕 지구와 닿아 있다. 여행자들에게는 늘 가우디와 고딕 지구가 우선이지만 여행 중에 두세 번은 지나게 될 람블라스 거리에서 도보로 10분 남짓한 곳에 보른 지구가 있다. 그러니까 고딕 지구에서 횡단보도를 하나 건너기만 해도 전혀 다른 세상을 만날 수 있다. 그곳에는 가우디 건축물도 없고, 그 흔한 자라 매장도 없다. 하지만 보른 지구에는 수많은 골목이 있다. 그리고 골목에는 이 도시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가 있다.

 산타마리아 델 마르 성당을 중심으로 불규칙하게 뻗어 있는 좁은 골목들은 구시가지 특유의 서늘한 기운 탓에 여행자들이 선뜻 들어서지 못하지만 한 걸음만 들어서고 나면 쉬 돌아 나올 수 없는 매력이 있는 곳이다.(물론 전혀 위험하지도 않다)

 이 골목들은 ‘장인의 거리’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골목골목 100여 개가 넘는 숍들이 있다. 독립 디자이너들이 작업을 하고 그 결과물을 팔기도 하는 스튜디오들이다. 폐자동차에서 나온 재료만으로 가방을 만드는 디자인 팀이나 자전거 타이어만을 수거해서 작업을 하는 작가, 폐현수막으로 가방을 만드는 디자이너 등의 리사이클 가게들과 천연가죽으로 소품을 만드는 공방, 그리고 어떤 유명 브랜드와 견주어도 부족하지 않은 훌륭한 옷을 비싸지 않은 가격에 판매하는 패션 디자이너들의 작업실과 숍이 있다. 그 외에도 스페인에서 가장 맛있는 크루아상을 만든다는 빵집과 160년 동안 옛 방식 그대로 아몬드를 볶는 견과류 가게에서 구시가지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를 내리는 테이크아웃 카페에 이르기까지 그 스펙트럼 또한 다양하다.

 이 도시에서 띄엄띄엄 7년을 지냈지만 지금도 보른 지구의 낯선 골목을 만난다. 그리고 그 골목에는 어김없이 눈길을 사로잡는 디자이너의 스튜디오나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평화로움이 가득한 카페가 있다. 낡은 이젤을 세워두고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나 바느질을 하거나 뜨개질을 하는 디자이너 혹은 망치질을 하는 청년을 마주치는 일은 이 골목의 일상이다. 그러니까 보른 지구는 피카소 미술관만 휙 둘러보고서 이런 곳이구나 정의 내릴 수 있는 단순한 곳이 아니다. 큰길에서벗어나 시간과 길을 잃고 걷다 보면 그제야 한 낮의 여유로운 공기와 그 구석구석을 채우는 예술의 자유로움과 한가로움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보른 지구다.

 그렇게 보른 지구 구석구석을 걷고서도 이 도시의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면 연락하시라. 당신이 아직 발견하지 못한 골목에서 그 모든 맘을 녹여줄 빵과 커피 한 잔 기꺼이 살 준비가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