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호] 보른 지구에 숨겨진 바르셀로나의 진짜 매력

 ‘바르셀로나’ 하면 떠올리는 것은 무엇일까? 서른 해를 넘게 살았다면 황영조 선수와 함께 몬주익 언덕을 떠올릴지도 모르고, 이미 이 도시에 다녀간 경험이 있다면 가우디의 놀라운 건축물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축구를 좋아한다면 호나우지뉴와 메시로 대표되는 축구팀 FC 바르셀로나를 떠올릴 테고, 젊은 세대들은 자라나 망고로 대표되는 패션 브랜드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짜 바르셀로나를 완성하는 것은 사실 가이드북에나 가득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걸 이 도시에서 며칠만 여유 있게 지내보면 알 수 있다.

 문제는 우리의 여행이라는 게 그렇게 여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여유를 찾아 떠나온 여행이 여유롭지 못하다는 아이러니. 바쁜 일정을 쪼개고 휴가를 모으고 모아 몇 년 만에 나온 여행에서 바르셀로나에서만 며칠을 보낸다는 건 유럽의 수많은 매력적인 도시들을 두고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당신의 일정이 넉넉하지 않다면 바르셀로나의 매력을 짧은 시간에 만날 방법이 있다. 보른 지구로 가라.

 보른 지구는 바르셀로나 구시가지의 한가운데 관광객들로 가득한 고딕 지구와 닿아 있다. 여행자들에게는 늘 가우디와 고딕 지구가 우선이지만 여행 중에 두세 번은 지나게 될 람블라스 거리에서 도보로 10분 남짓한 곳에 보른 지구가 있다. 그러니까 고딕 지구에서 횡단보도를 하나 건너기만 해도 전혀 다른 세상을 만날 수 있다. 그곳에는 가우디 건축물도 없고, 그 흔한 자라 매장도 없다. 하지만 보른 지구에는 수많은 골목이 있다. 그리고 골목에는 이 도시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가 있다.

 산타마리아 델 마르 성당을 중심으로 불규칙하게 뻗어 있는 좁은 골목들은 구시가지 특유의 서늘한 기운 탓에 여행자들이 선뜻 들어서지 못하지만 한 걸음만 들어서고 나면 쉬 돌아 나올 수 없는 매력이 있는 곳이다.(물론 전혀 위험하지도 않다)

 이 골목들은 ‘장인의 거리’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골목골목 100여 개가 넘는 숍들이 있다. 독립 디자이너들이 작업을 하고 그 결과물을 팔기도 하는 스튜디오들이다. 폐자동차에서 나온 재료만으로 가방을 만드는 디자인 팀이나 자전거 타이어만을 수거해서 작업을 하는 작가, 폐현수막으로 가방을 만드는 디자이너 등의 리사이클 가게들과 천연가죽으로 소품을 만드는 공방, 그리고 어떤 유명 브랜드와 견주어도 부족하지 않은 훌륭한 옷을 비싸지 않은 가격에 판매하는 패션 디자이너들의 작업실과 숍이 있다. 그 외에도 스페인에서 가장 맛있는 크루아상을 만든다는 빵집과 160년 동안 옛 방식 그대로 아몬드를 볶는 견과류 가게에서 구시가지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를 내리는 테이크아웃 카페에 이르기까지 그 스펙트럼 또한 다양하다.

 이 도시에서 띄엄띄엄 7년을 지냈지만 지금도 보른 지구의 낯선 골목을 만난다. 그리고 그 골목에는 어김없이 눈길을 사로잡는 디자이너의 스튜디오나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평화로움이 가득한 카페가 있다. 낡은 이젤을 세워두고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나 바느질을 하거나 뜨개질을 하는 디자이너 혹은 망치질을 하는 청년을 마주치는 일은 이 골목의 일상이다. 그러니까 보른 지구는 피카소 미술관만 휙 둘러보고서 이런 곳이구나 정의 내릴 수 있는 단순한 곳이 아니다. 큰길에서벗어나 시간과 길을 잃고 걷다 보면 그제야 한 낮의 여유로운 공기와 그 구석구석을 채우는 예술의 자유로움과 한가로움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보른 지구다.

 그렇게 보른 지구 구석구석을 걷고서도 이 도시의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면 연락하시라. 당신이 아직 발견하지 못한 골목에서 그 모든 맘을 녹여줄 빵과 커피 한 잔 기꺼이 살 준비가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