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호] 떠나거나 혹은 즐기거나

 유럽의 젊은이들에게 여름휴가지 1위는 단연 스페인이다. 다른 유럽 도시에는 없는 것들이 있는 탓이다. 여름내 맑은 하늘과 뜨거운 햇살, 바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지는 밤 문화, 비교적 저렴한 물가와 다양한 먹거리. 그 외에도 수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이 몇 가지 만으로도 여름 휴가지로서의 매력은 충분하다. 연중 여행객들로 붐비는 곳이지만 여름이면 특히나 많은 여행객으로 가득한 바르셀로나의 해변과 시내 구시가지는 주말과 평일의 차이를 느낄 수 없이 북적인다. 예컨데 예약하지 않고 가우디의 성가족성당에 갔다면 두어 시간은 땡볕 아래에 줄을 서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그렇다면 모두가 스페인으로, 바르셀로나로 모여드는 이 계절에 이 도시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가? 이 도시에서 첫 여름을 보내던 때의 기억을 되돌아보면 ‘쓸쓸함’만 가득했었다. 7월이 지나고 8월이 오면 오가는 사람들로 분주했던 동네는 문 닫은 세트장 마냥 썰렁해진다. 이곳의 여름휴가는 짧게는 3주에서 길게는 한 달 동안 이어지는데 그 긴 시간 동안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도시를 떠나는 탓이다. 

(여기서 잠깐. 여름의 스페인 여행을 준비 중이라면 기억해 두어야 하는 것이 있다. 당신의 여행 일정표에 한 줄을 채운 그 레스토랑 역시 여름내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유명한 츄러스 가게도 8월에 2주간 문을 닫고,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고딕 지구의 한 레스토랑도 8월 한 달간 문을 닫는다. 우리로써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이곳은 그렇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7, 8월 두 달간 모든 브랜드의 세일이 이어진다는 것쯤 되겠다.)

 한 달간 휴가를 받은 이곳 사람들은 집을 떠나 한적한 해안도시를 찾아가고 이런저런 이유로 장기간 휴가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또 그들 나름의 여름을 즐긴다. 9시가 넘어도 해가 지지 않는 이곳의 여름밤에는 매일 축제가 이어진다.

 

1. 현지인들의 대표적 휴가지 Costa Brava

코스타 브라바는 바르셀로나에서 프랑스까지 이어지는 지중해 연안을 부르는 이름인데 수십 개의 크고 작은 해변이 이어진다. 이곳들은 대중교통이 쉽게 닿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지만 고속버스 등으로 비교적 찾아가기 쉬운 해변들도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곳이 Tossa de mar이다. 오랜 성벽 위에서 내려다보는 아름다운 해변뿐 아니라 바닥까지 보이는 맑은 물은 대도시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이곳에는 연중 비어있다가 여름에만 가득 차는 아파트들이 많은데 이 또한 스페인 사람들이 휴가기간 동안 살다가는 별장 혹은 콘도형 주택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여행은 대체로 가족여행인데 스페인 사람들의 삶은 결혼 전과 후로 나뉜다고 할 만큼 결혼 후엔 가족 중심으로 살아간다.

2. 도시에 남은 자들의 축제

이런저런 이유로 도시에 남은 사람들은 그들만의 축제를 즐긴다. 바르셀로나의 현지인들이 즐기는 대표적인 여름 축제는 Sala Monjuic 과 Festa de Gracia다. Sala Monjuic은 여름 동안 몬주익 성에서 펼쳐지는 심야 축제인데 해 질 녘이 되면 먹고 마실 거리를 챙겨서 성벽 아래 잔디밭에 수많은 사람들 모이고 성벽 아래 무대에서는 짧은 콘서트가 펼쳐지며 해가 완전히 지고 나면 성벽의 대형 스크린에는 영화가 상영된다. Festa de Gracia은 8월 중순 관광객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그라시아 지구 전체에서 펼쳐지는 축제인데 골목골목 각기 다른 테마를 가진 설치작품과 그에 어울리는 공연이 낮부터 밤까지 일주일 동안 이어지는 그들만의 소박하지만 뜨거운 축제다. 

 

 나는 학창시절 해운대에서 10년을 넘게 살았었다. 하지만 나에겐 여름의 해운대 해수욕장에 가 본 기억이 없다. 대신 우리는 마치 우리들만 허락받은 곳인 것 마냥 관광객들을 피해 송정해수욕장으로 갔었다. 이곳 바르셀로나의 사람들도 똑같은 이유로 바르셀로네타 해변이 아닌 이 도시를 벗어난 곳에 있는 하지만 멀지 않은 곳의 바다를 찾는다. 그리고 올해에도 이 도시를 떠나지 못하는 나는 오늘도 몬주익 영화제의 상영 일정을 검색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