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호] 바르셀로나의 축구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월드컵이 한창이던 지난 6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스페인이 예선 조별리그에서 탈락했을 때 정말 많은 지인들이 ‘그곳 분위기는 어때?’ 라고 물었었다. 혹은 바르셀로나 여행을 가려고 하는데 분위기가 좋지 않을까 봐 걱정 이라는 글들이 여행 커뮤니티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우리나라 대표팀의 공격수 이름은 몰라도 메시라는 이름은 누구나 들어봤을 정도로 알려졌고, 자연스레 바르셀로나는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득할 거란 결론에 닿고 나면 월드컵은 어마어마한 이벤트겠구나. 라고 생각하게 마련이니까 당연한 질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작 이 도시 어디에서도 ‘스페인’의 탈락을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역사 속의 이야기들을 생략하고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바르셀로나 사람들은 스스로를 스페인 사람이 아닌 까딸루냐(바르셀로나가 속한 주)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고, 축구는 오랫동안 지역감정을 대변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 지역감정은 쉽게 한일감정에 비유되기도 하는데 어떤 면에서는 그 골이 한일감정보다 훨씬 깊다고 느껴지기도 할 정도이다. 그러니 이들의 입장에서 스페인 국가대표팀은 자신들을 대표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국왕 컵’ 대회에 임하는 자세를 묻는 기자에게 ‘당신들의 국왕’컵에 대해 묻지 말라고 대답했다는 이 지역 출신 FC바르셀로나 선수의 인터뷰 일화는 놀랍지도 않다. 그러니까 그 선수는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대을 밖으로 꺼냈을 뿐이다. 전국 시청률이 80%를 넘긴다는 유로컵 대회에서도 까딸루냐 지역이 전국 최저 시청률을 기록한다. 

 아무튼, 스페인의 탈락이 확정된 다음날 만난 친구들에게 월드컵 얘기를 꺼냈더니 어깨를 으쓱하고는 되려 한국은 잘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이곳 사람들은 월드컵 중에도 곧 시작될 새 시즌의 FC바르셀로나를 걱정한다. 언론은 FC바르셀로나 소속의 선수들이 각자의 고국으로 돌아가 대표팀에서 활약하는 소식들이 1면을 채운다.

 유럽여행을 할 때 가이드북 보다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는 편이 좋다는 이야기처럼 바르셀로나를 여행하게 된다면 스페인보다는 까딸루냐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 더 큰 도움이 된다. 그러고나면 이곳에서 겪게 될 낯선 풍경들을 하나씩 이해할 수 있다. FC바르셀로나 축구팀 주장 완장의 무늬 마져도 달라 보이게 될 테니까. 그리고 그것은 비단 축구뿐 아니라 언어와 문화를 아우르는 시선의 변화를 가져다준다.

 월드컵 결승전이 끝나던 날 바르셀로나 시내에는 FC바르셀로나에 소속된 선수가 둘이나 있는 아르헨티나를 위로하고 응원하는 함성이 늦은 밤까지 이어졌다. 그제야 월드컵 기간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고, 그땐 이미 월드컵은 끝이 나 있었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에게 축구는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