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호] 스스로 결정하는 법을 아는 아이들

 초대를 받아 친구의 집으로 식사를 하러가던 길에 스포츠 용품점에 들러 친구 아들에게 선물 할 제법 값나가는 축구공을 하나 샀다. 동네 축구팀에서 가장 실력이 좋다는 아이는 곧 FC바르셀로나 유소년팀에 입단 테스트를 앞두고 있다고 했다.

 아무튼 그날 저녁, 밥을 먹는내내 TV에 연결한 캠코더로 아들의 플레이 모습을 보여주는 친구의 모습을 보며 한국과 다르지 않구나 싶었다. 나에겐 다 똑같은 아이들의 축구일 뿐인데 그에게는 동작 하나하나가 그리도 자랑스런 모양이었다. 몇주가 지나고 드디어 입단테스트를 하러 간다는 친구네 가족들에게 가서 사진이라도 몇 장 찍어주겠다며 눈치 없이 따라나섰다.

 테스트가 있는 FC바르셀로나 팀의 연습구장에 도착한 나는 너무나 익숙한 풍경에 좀 당황했던 것 같다. 그것은 마치 마치 대입 수능을 치르는 시험장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운동복 차림의 아이들 곁에는 아이들보다 긴장한 모습의 가족들이 가득했다. 이미 시작된 앞 조의 테스트를 지켜보는 가족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하지만 정작 내가 더 크게 놀란건 몇일 후의 일이다. 입단 테스트에 합격을 해서 계약을 제안 받았다는 소식을 전하며 기뻐했던 친구에게 축하인사를 전한지 일주일쯤 되었을까 아들은 새로운 팀에서 잘 뛰고 있느냐고 물었더 '그냥 예전 팀에 남기로 했어' 라며 어깨를 으쓱한다. 이유를 물었더니 기동네 축구팀의 정든 친구들과 헤어지는게 싫다고 해서 네 뜻대로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내가 놀란 표정을 했더니 그 결정을 한 아들도 자신도 전혀 아쉬워 하지 않는다며 웃어주었다. 아니 그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내가 더 아쉬워하고 있었다. 아마도 나는 그 아이가 나중에 유명한 축구 선수가 되면 내가 그 아이에게 축구공을 사줬었노라 숟가락을 얹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그 부모의 맘은 나보다 스무배쯤은 더 아쉬워해야 하는게 아니겠느냔 말이다. 

 내가 아는 한 이곳 사람들의 교육 방식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가 잘하는 것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돕고, 함께 기뻐하고 힘들어한다. 하지만 중요한 결정의 순간을 마주하게되면 그 결정은 온전히 아이의 몫이 된다. 그리고 그것을 바꾸려고 하지도 나무라지도 않는다. 이는 동네 놀이터나 공터에서도 마찬가지다 천방지축으로 소리지르며 뛰어노는 어린 아이들을 나무라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다만 그러다 넘어지고 다쳐도 일어나라고 말할뿐 누구 하나 아이에게 손 내밀어 주지 않는다. 당연하게도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커서도 선택을 남에게 미루는 법이 없다. 그리고 그에 따르는 결과를 받아들인다. 어쩌면 '여기 애들 참 쿨해' 했던 수많은 순간들이 사실은 그들에겐 쿨한 것이 아닌 당연한 책임감 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교육방식의 긍정적인 효과를 알고 다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이 어린 축구선수의 선택을 지지 할 용기가 나에겐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네 가족을 내내 지켜보면서 나도 이 도시에서 아이를 낳아 키워보고 싶단 생각이 드는 건 내가 자라온 내 나라의 아이들이 지금 이순간에도 얼마나 고된 일상을 보내고 있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어린 축구 선수가 메시보다 덜 행복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걸 이제는 알 것도 같다.